탐정 사무소의 불이 꺼진 후에도, 이한은 김민규의 페이스 칩 정보와 마지막 동선을 담은 홀로그램 파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여다보았다. 파일 속 김민규의 웃는 얼굴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쓰고 있던 가면의 디자인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사치품으로 보였겠지만, 이한의 눈에는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로 보였다. 블랙스크린 기업이 자랑하는 ‘블랙쉴드’ 보호 기능이 적용된 가면. 칩 보호 기능이 뛰어난 만큼, 이를 뚫고 가면을 훔쳤다는 것은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수상해."
이한은 중얼거렸다. 범죄자들이 노린 것은 칩에 담긴 재산 정보만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돈을 원했다면 해킹만으로도 충분했을 테니. 그들은 김민규의 존재 자체를 원했다. ‘살아있는 가면’을 만들어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려는 의도이거나, 아니면… 이한의 머릿속에 과거의 악몽이 스쳐 지나갔다. 가면 절도범들의 가장 흔한 수법은 피해자의 얼굴을 훼손하여 칩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칩이 뇌파와 심장 박동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훼손 과정에서 피해자는 십중팔구 사망에 이른다. 이한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죄책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이한은 서현과 함께 김민규의 마지막 행적지인 ‘더 스크린’ 카페로 향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카페는 활기가 넘쳤지만,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대화는 오직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이루어졌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각자의 가면 속 디스플레이에 집중하며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으면 서로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어. 진짜 나를 볼 수 있는 건 온라인 공간뿐이니까.”
서현이 씁쓸하게 말했다.
“결국엔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진짜 관계를 잃게 만든 기술일 뿐이지.”
이한이 차갑게 답했다. 그에게 가면은 편리함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한 도구였다.
이한은 김민규가 마지막으로 결제한 기록을 토대로 그의 행동을 추적했다. 칩 기록에 따르면 김민규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곧바로 인근
의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은 가면 전문점이었다. 김민규는 자신의 고가 가면이 아닌, 평범한 저가 가면을 구매한 기록이 있었다.
“왜 굳이 더 싼 가면을 산 거지?” 서현이 의아해했다.
이한은 그가 구매한 저가 가면의 코드를 분석했다. 코드는 평범했지만, 구매 시각과 장소를 특정하자 의심스러운 부분이 보였다. 가면 전문점의 데이터 기록이 묘하게 조작된 흔적이었다. 이한은 즉시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능숙하게 해킹을 시도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오갔다. 칩 설계자의 능력이었다.
‘제기랄.’
이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게의 데이터베이스는 생각보다 강력한 암호로 보호되고 있었다. 단순히 해커 한두 명이 만든 수준이 아니었다. 이한은 직감적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블랙마켓의 소행이 확실해.”
이한이 말했다.
“이들은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단순히 개인적인 범행이 아닐 거야.”
그때, 이한의 노트북 화면에 익숙한 로고가 떴다. 블랙스크린(BlackScreen) 기업의 로고였다. 이한의 눈이 흔들렸다. 그가 만든 시스템을 훔쳐간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의 CEO는… 그의 친구, 강민준이었다.
“블랙스크린이라고? 왜 이 가게 데이터베이스에 그 로고가 있지? 이들은 가면을 만드는 기업일 뿐인데.”
서현이 놀란 듯 물었다.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화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블랙스크린 기업의 기술은 이미 자신이 설계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들은 단순히 페이스 칩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칩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김민규가 가면 전문점에서 구매한 저가 가면의 코드를 역추적하자, 이한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그 가면의 코드는 해킹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살아있는 가면’을 제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가면을 훔친 범죄가 아니라, 계획된 살인임을 의미했다.
이한의 손이 떨렸다. 자신이 만든 기술이 살인의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짓눌렀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감이 드리워졌다. 서현은 그런 그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한, 괜찮아?"
"내가… 내가 만든 거야, 서현. 이 모든 걸. 내가 설계한 기술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고 있어."
이한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의뢰인의 남편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했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지키려다 잃었을 그 처절한 순간을. 김민규는 자신의 고가 가면을 벗고 평범한 가면을 쓴 채 사라졌다. 아마도 누군가와 은밀한 거래를 하려 했거나, 혹은 가면을 벗고 자유를 찾으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결국 죽음이었다.
이제 이한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의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가면 절도범들은 그가 만든 시스템의 약점을 노려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 그의 오랜 친구이자 배신자, 민준이 있었다. 이한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바로잡고, 이 지옥 같은 사회를 끝내기 위해 그가 직접 만든 시스템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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